자유

스마트폰의 주객전도

플라스틱조각 2025. 3. 16. 00:22

내가 그나마 오래 썼던 역대 휴대전화들

 

  스마트폰은 일상에서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휴대전화의 주된 기능이었던 과거에서 음악 스트리밍, 카메라, 인터넷,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각종 앱부터 자동차 제어까지 이제 휴대전화는 우리 삶에 있어서 필수품이라는 흔한 말로는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휴대전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잠깐씩 꽤나 다양한 휴대전화를 사용해 보고 여전히 새로운 휴대전화에 관심이 많으며 매일 새로 나오는 휴대전화의 스펙과 리뷰 등을 찾아보며 새 휴대전화 구매를 참아내고 있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서 중요해진 만큼 그 기능이 다양해지고 사양도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와 비례하여 제품의 가격도 엄청나게 상승했다. 그래서인지 스마트폰을 보호하기 위한 케이스와 강화유리 필름 등의 액세서리도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필름을 붙이고 케이스를 끼워 1~2년 사용하다가 중고로 판매하거나 보상판매를 통해 갈아치울 것인데 스마트폰의 후면 디자인으로 왈가왈부할 일이 있느냐는 글도 많이 봤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금 불합리함을 느낀다. 스마트폰의 디자인이며 스펙이며 모두 따져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한 뭐시깽이 글래스가 들어가서 얼마나 튼튼해지고 무슨 소재로 무게가 가벼워지고 얇아진 스마트폰을 두꺼운 케이스로 감싸고 무슨 필름을 붙여서 기어코 둔기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또 매년 새로 출시되는 신제품을 구매하고 싶어한다.

 

맞다 그건 바로 내 얘기다.

 

  언제부턴가 스마트폰을 오래, 최소 4~5년 이상 쓰는 사람들을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짧게 짧게 쓰며 기기변경을 해버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기변증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 기변증이라는 진단명이 있다면 그 환자는 나였을 것이다.

 

  가장 심각했을 때가 2021년을 전후로 해서인데, 20년도 4월에 아이폰 se2가 나왔을 때 그것을 사서 쓰다가 배터리 용량이 적고 화면이 작은 것이 아쉬워 21년도 7월에 아이폰 12를 구매하고, 1달이 지나지 않아 콜드롭(전화 신호가 오지 않는)을 경험하고 근 몇 년 사이 삼성의 망작으로 평가받는 갤럭시 s21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기행을 저지른 일이다. (그 사이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아이폰 12 미니를 형수에게 빌려 6개월 정도 사용한 일도 있다)

  다행히 갤럭시 s21 이후로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디펜스를 성공하며 갤럭시 s25 출시까지 잘 버텼다.

 

  요즘 블로그를 해본답시고 이것저것 사진을 찍어 보는데, 평소 아무렇게나 찍던 사진이 막상 각을 잡고 예쁘게 찍으려고 보니 정말 구리다. (촬영 실력이 구릴 확률이 높다) 좋은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라 메인 카메라는 역시 갤럭시 s21의 카메라와 아이폰 se2의 카메라인데, 뭔가 아쉽다. 그러면서 자연히 또 새 휴대전화의 유혹에 빠진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잖아'

 

  콘서트홀에서 너무 먼 좌석에 앉아 콩알 만 한 가수를 확대해서 촬영해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고, 각종 AI 기능들이 추가되고, 알약 같은 카메라 홀도 유려한 '다이내믹 아일랜드'로 탈바꿈해 주는 근래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출시된 지 4~5년 된 스마트폰은 아무리 전자기기 커뮤니티에 현역인가요?” 하고 물어도 이미 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과거에 저지른 나의 기행들, 혹은 업보를 떠올리며 오늘도 신제품 구매를 참는다.

 

  최근 투명 케이스도 변색돼서 거의 갈색이 된 지경이고, 그와 맞물려 붙여두었던 강화유리도 깨져 완전히 생폰을 사용하고 있다. 가볍고, 흠집이 잘 나고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측면의 크롬 도금도 잘 벗겨진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한낱 휴대폰에 덕지덕지 뭘 끼우고 붙였던가? 물건은 그저 물건일 뿐인데 나는 언제부턴가 물건에 나를 귀속시키는 주객전도의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올해의 다짐 중 하나가 '불필요한 전자기기 구매하지 않기'였다. 나는 이 다짐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갤럭시 s21을 쓴다.

 

  그런데 구글 픽셀 한국 언제 정발함?